베트남 노동정치와 우리 노동운동이 생각할 것들 | ||
---|---|---|
등록일 : 2022/11/25 l 작성자 : 대학원 l 조회수 : 347 l | ||
2차 세계대전 이후 당-국가 체제를 구축해온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노동조합이 집정당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건국을 위한 대중운동의 동력은 노동운동 역사와 무관하지 않지만, 국가주도의 발전주의 경제성장 논리를 내재화한 이후의 노동조합은 독립성과 자주성을 상당히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쾡이 파업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대응 1986년 도이모이(Đổi mới) 정책 실시 이후 베트남 노동자들은 독립 노조 건설보다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지도부 없는 살쾡이 파업(wildcat strike) 전술을 추구해왔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발생한 총 1998건의 파업(2011년에만 1000회의 파업이 발생했다)은 모두 불법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파업의 요건과 절차가 복잡해 합법 파업의 실행 자체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 전술은 노동자들이 자본으로부터 일정한 양보를 얻어 내는 데어느 정도 성공했다. 멈추지 않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 압력에 직면한 정부와 자본은 이런 흐름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에 관한 과제를 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대 후반 베트남 정부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체결을 시도했던 점은 적어도 독립적인 노동조합 제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베트남 정부가 당시 오바마 미 행정부와 약속한 내용에 따르면, 기존에는 노총을 통해서만 노조 가입이 가능했지만, 법 개정을 통해 복수노조 및 초기업단위 노조의 설립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베트남 정부는 TPP가 베트남 경제에 가져올 '달콤한'(?) 미래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고심 끝에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법 개정을 약속한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는 미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전망이 불투명해졌고, 베트남 정부가 협약을 지킬 책임 역시 모호해졌다. 게다가 해고가 어려운 베트남 노동법에 불만을 느꼈던 삼성 등 한국 자본은 노조 설립과 파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이 시기 삼성 현지법인에 소속된 한 임원은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복수노조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베트남 노동자 계급의 멈추지 않는 살쾡이 파업은 분명 골칫거리였고, 이는 단순히 금지하고 무시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해외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정부 입장에선 이런 파업은 여전히 문제이며, 게다가 서방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과정에서 '결사의 자유' 보장은 피할 수 없는 요구다. 이와 같은 국제정치와 노동정치, 자본의 이해관계가 뒤엉킨 논쟁과 절충 끝에 2021년 봄, 노동법 개정이 이뤄졌다. 2022년 1월 1일부터 베트남 노동자는 베트남노총이 아닌 독자적인 '노동자 대표단체'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는 노동권을 신장하거나, 결사의 자유를 옹호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여기서 '대표단체'란 기업 수준에 국한된 조직이며, 전국적인 연맹을 결성할 수 없다. 옛 노동법의 경우 단위 기업에 오직 단수의 노동조합만을 허용했는데, 개정된 법에서 노조는 기존의 법적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노조가 설립되면 베트남노총에 속하게 되며, 단체교섭권·단체협약권·합법적 쟁의권을 갖는 것으로 했다. 또 다른 변화는 공식 노동조합 외에도 노동자 대표단체를 설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노총에 편입되지는 않지만 관할 국가기관에 등록해야 하고, 노동조합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은 복수의 노동자조직이 가능하기 위해 개정 노동법은 단체교섭 상 노동자조직들의 교섭 창구단일화 규율 역시 새롭게 도입했고, 단체협상권을 가진 노동자조직(노조 또는 노동자대표단체)이 사업장 내 노동자의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파업을 주도할 수 있게 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 대표단체 설립이 가능해진 것은 노동자 계급의 요구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기습적이고 폭발적이란 성격 때문에 기업들에게 더 불편하게 여겨지는 살쾡이 파업을 완화하고 유화시키기 위해 집정당 스스로 고안한 제도화 솔루션이라 할 수 있다. 노총 내부의 대응도 나왔다. 첫째는 베트남노총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었다. 사실 베트남노총은 헌법이 규정한 정부기관에 가깝지만, 노동부 산하기관은 아니다. 두 조직은 서로 독립적이며, 노총은 국가임금위원회에 참가하고 임금협상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노동자들은 노총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 주리라 생각하지도, 그렇다고 큰 불만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명절 선물이나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처럼 인식될 뿐이다. 베트남 노동문제 연구자 조 버클리(Joe Buckley)는 "베트남노총은 마치 인적자원부 같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노총은 실제 노동권 증진을 위해 정책 로비 활동을 펼치기도 하고, 법정 노동시간 감축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기도 한다. 심지어 2019년에는 정부를 압박해 노조세(union tax)를 낮추지 못하도록 저지하기도 했다. 베트남노총의 이런 모순적인 성격은 러시아혁명 이후 노조의 역할에 대한 현실사회주의 내부의 모순적인 견해가 절충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80452
추천링크
|
||
댓글 0개 (욕설이나 비방글은 동의 없이 임의삭제될 수 있습니다. 매너있는 댓글 부탁드립니다.) 노동학포럼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신뢰있는 답변이 될 수 있도록 전문가 회원의 댓글과 일반회원의 댓글을 구분표시 하고 있습니다.
★ 비방이나 욕설글 등은 임의 삭제됩니다. 매너있는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
커뮤니티
번호 | 제목 | 작성자 | 조회수 | 날짜 |
---|